링컨 미국 전 대통령 업적 반대파 언론 강제 폐간
링컨 미국 전 대통령 업적 반대파 언론 강제 폐간
링컨은 북부 전역에 자신의 적이 있다고 여겼다.
그에게 있어 적이란 반드시 남부 연합을 지원한 사람 말고도 전쟁 노선에 불참한 사람을 뜻한 것이었다.
링컨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반역자 혐의를 부여했다.
여기엔 링컨을 좋아하는데 그의 정책엔 비판적인 저명한 신문의 편집장, 소유주 다 포함이었다.
그들이 투옥된 것도 이런 이유다.
링컨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군사력을 앞세워 수십 개의 신문을 폐간시켰다.
또한 언론인을 체포, 구금하며 대응했다.
지난 1862년 2월 2일 연방정부는 미국 내 모든 전신 내용을 검열했다.
지난 1861년 5월 jorunal of commerces 측은 전쟁에 반대하는 사설을 적은 100개 북부 신문 명단을 발표했다.
링컨 행정부는 체신 장관에게 이 신문들의 우편배달을 거부하도록 명령했다.
당시 거의 모든 신문 배달은 우편으로 이뤄졌다.
이 조치는 신문 보급을 아예 차단한 효과를 지녔다.
일부 신문은 링컨 정부를 비판하지 않겠단 서약을 하고 나서 다시 신문을 발간할 수 있었다.
우편을 못 쓰자 뉴욕 데일리 뉴스는 사설 속달 통신원과 배달 소년들을 고용해 신문을 배포했다.
그에 대해 연방 보안관들을 시켜서 북부 주들의 도시에서 그 신문을 압수했다.
결국 신문사는 파산했다.
brooklyn eagle 측은 링컨에 반대하는 기사를 더는 싣지 않겠단 서약 후 다시 발간을 허가받았다.
freeman's appeal 측은 링컨이 편집장인 제임스 맥매스터스를 체포해서 리파예트 요새로 보내고 검열받았다.
지난 1861년 9월 뉴욕시 모든 반대파 언론은 군대에 의해 검열받았다.
지난 1861년 4월 전쟁으로 인한 남부 반란 활동을 효과적으로 제지하려고 링컨은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일선 부대 지휘관에게 인신 보호 영장을 임시 중단할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북부 일부 주의 위험 지역에 대해선 계엄을 실시 인신 보호 영장을 중단, 파괴분자들을 군사 재판에 회부했다.
메릴랜드 주의 반란 상황이 심각해서 연방 군은 볼티모어 시장과 경찰서장, 의원, 존 메리먼을 우두머리로 한 일부 반란자들을 체포한다.
메리먼이 군대 체포에 불복하자 대법원장 로저 브룩 토니에게 서신을 보내 영장 발부를 요청했다.
토니는 이것에 응해서 인신보호영장에 서명한 뒤 당시 그를 수감 중이던 맥켄리 요새의 조지 캐드월러더 장군에게 메리먼을 법원으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원래 인신보호영장은 법원이 불법으로 구금된 시민을 심사, 재판 지역, 안건을 옮길 때 발부한다.
캐드월러더 장군은 링컨 명령 이유로 그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토니는 법정 모독죄로 법원 경위를 파견해서 그를 체포하게 했지만 장군 휘하 병사들에게 가로막혀 영장 집행을 못했다.
둘은 이렇게 강하게 대치했다.
전쟁이 계속 확대되며 링컨은 현행 법률만으로는 반란 군중들을 다스리기 부족하다고 여긴다.
이에 지난 1862년 9월 진일보로 계염령을 내린다.
내용은 반란 참여, 교사한 자들에 대해 계엄법을 적용 군사 재판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군대 장교들이 각지 반란에 가담한 민중을 체포한다.
최종적으로 14000명가량의 정치범이 체포됐다.
이 기간 각 지역 법원은 링컨의 행동에 대해 묵인했다.
군사당국과 아무런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 전쟁 직후 석방됐지만 일부는 교랑 폭파, 도로, 군사 시설 파괴 등 심각한 범죄 행위를 저질러서 형기가 늘어났다.
이들도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인정했다.